새로운 손님은 언제나 환영이야, 아이만 빼고!

 

ⓒ 조선일보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98명에 그쳤다. 2017년 1.05에서 더 떨어진 것이다. 앞으로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8 혼인•이혼통계’에 따르면 18년 혼인 건수는 25만 7600건에 불과했다. 지난 72년(24만 4780건) 이후 46년 만의 최저치이다. 2012년 이후 이 혼인 건수는 계속해 감소하고 있다. 신생아의 98%가 법적 부부에게서 태어난다는 것을 돌이켜 보면, 앞으로 출산율이 계속해서 떨어질 것이라는 데 이견을 제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부는 저출산 정책을 계속해 내놓고 있지만, 근본적인 부분은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지난해 교육부의 조사 결과, 초중고교생 1인당 월평균 29만 1000원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교육비만의 문제는 아니다.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이들은 정규직의 경우 43%, 비정규직의 경우 2%에 불과하고, 여성들의 경우 복직 시 경력단절이 우려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장 큰 문제는 출산과 육아가 오직 ‘부모’의 문제로 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 블리자드

 

새로운 손님은 언제나 환영이야, 너만 빼고.

거리 어딜 가든 노키즈존이 넘친다. 카페에도, 식당에도, 심지어는 호텔과 리테일 매장에도. 정부에서 노키즈존에 대한 조사를 따로 하지 않기에 정확한 수치는 파악이 어렵지만, 매장 앞과 SNS에 ‘어린이를 받지 않는다’고 공지한 곳은 정말 쉽게 만날 수 있다. 아동의 존재는 그 자체로 인상일 찌푸릴 이유가 된다. 아이가 소란을 피우기 전에도 이미 머릿속 각인된 짜증이 밀려온다. 아이를 동반한 부모들은 ‘차별’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아동들이 혐오의 대상이 된 건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애가 좀 그럴 수도 있죠.” 아이를 동반한 ‘진상’이 그 이유로 꼽힌다. 경기연구원의 조사 결과(2016.2)에 따르면, 공공장소에서 소란스럽게 우는 아이들로 인해 불편을 겪었다는 응답이 93.1%에 달했다. 불편을 겪은 장소로는 식당과 카페가 72.2%로 압도적이었다.

ⓒ TBS

아이들은 시끄럽다. 뛰어다닌다. 큰 소리로 운다. 종종 이런 특성은 안전문제를 만들거나, 주변에 소음을 안겨준다. 이런 아이들과 격리되어 편안한 식사를, 담소를, 쇼핑을, 휴식을 즐기고 싶다. 이 당연스럽고 자연스러운 욕구는 모든 아동을 배제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아이가 피해를 주기에, 아이와 마주하고 싶지 않다. 결국 아동들이 향할 곳은 단 두 군데 뿐이었다. 집과 키즈 카페.

 

아이들은 어떻게 혐오의 대상이 되었나

 

어떤 이들은 부모가 아이를 통제하지 않은 결과라고 했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말을 못 뗀 아동에게 울음은 유일한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어떤 이들은 ‘몇몇의 이기적인 부모’ 때문이라고도 했다. 아이가 먹을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기저귀를 버리고 간다고. 하지만 모든 부모가 ‘이기적인 진상’일 것이라고 가정해 출입을 막는 것은 너무 게으른 처사다. (그렇다고 다른 ‘성인’들과 똑같은 음식을 먹을 수 있고, 기저귀가 필요 없는 연령의 아동이라고 출입이 허락되나?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부모가 아닌 진상들을 더 자주 만날 수 있다. 직원에게 욕설을 하고, 가게 전체가 떠나가라 시끄럽게 수다를 떨고, 계산을 한다면서 동전을 던지는 이들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 역시 미리 선별해내야 하지 않겠나. 만약 진상을 부리는 이들 중 남성의 비율이 더 높다고 남성의 출입을 금지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마 그 가게는 여론의 포화를 맞고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결국, 하나의 결론에 이르게 된다. 아이와 부모가 만만했을 뿐이라는 것.

 

오히려 아이가 예의를 배우지 못하게 막는 쪽은 ‘노키즈존’이다. 가야 할 식당을 잃은 아이는 식당에서의 예의를 배울 기회도 박탈당한다. 가야 할 매장을 잃은 아이는 매장에서의 예의를 배울 기회도 박탈당한다. 아동이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영역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영역 안에 있을 때뿐이다. 사회적 경험은 사회적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아이는 부모만 키우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예의를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부모의 의무만이 아니다.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당신의 의무이기도 하다. 육아의 책임은 육아를 하지 않는 모든 시민도 함께 지는 것이다. 이 의무를 포기하겠다는 것은 공동체를 포기하겠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진정 이기적인 것은 불쾌함을 참지 못하고 시민으로서 져야 할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11세 작가’로 유명한 전이수 씨는 노키즈존에 대해 이렇게 썼다. “어른들이 조용히 있고 싶고, 아이들이 없어야 편안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난 생각한다. 어른들이 편히 있고 싶어하는 그 권리보다 아이들이 가게에 들어올 수 있는 권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 어린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는 거니까. 어른들은 잊고 있나 보다. 어른들도 그 어린이였다는 사실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지닌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국민이 아닐 리 없다.

팀 해체에 노련한 밴드가 어딨나요

달이 차오른다, 가자

장기하와 얼굴들이 해체를 선언했다. 2008년 싱글 [싸구려 커피]를 들고 데뷔한 지 무려 10년 만이다. 팬들에게는 어쩌면 꽤 갑작스러운 결별이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해체이기 때문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언제까지나 음악을 통한 실험과 놀이를 보여줄 것만 같았던 팀이었다.

그들은 18일 0시 해체를 선언하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문장은 담담했다. “곧 발매될 5집은 장기하와 얼굴들의 마지막 앨범이 될 겁니다. 앨범 발매 후에는 올해 말까지 콘서트 등 여러 경로로 부지런히 여러분을 만나게 될 거예요.”

오랜 준비를 한 듯 보였다. 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저희들은 언제나 새로워지기 위해 노력해 왔”고 “이런 결정 역시, 또 다른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를 만류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오랜 기간 이들의 활동을 지켜봐 왔던 팬들과 동료들은 그저 숙연하게 감사와 찬사를 보낼 뿐이었다.

 

내가 한다면 하는 사람인 거 몰라

그래, 그들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장얼은 언제나 새로운 밴드였다. 1집은 이전에는 없던 음악이었다. 평단의 호평을 휩쓸었다. 데뷔와 동시에 ‘한국 대중음악의 오래된 미래’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산울림과 강산에에게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해 보였지만 그들의 음악과는 전혀 다른 음악을, 그들은 하고 있었다.

이후의 앨범들도 마찬가지였다. 2집은 1집과 달랐고, 3집은 2집과 달랐다. 4집은 3집과 또 달랐다. 그들은 매 앨범마다 밴드로서의 진화와 변화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2집 [장기하와 얼굴들]은 ‘1인 밴드’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았던 1집 [별일 없이 산다]가 보여주지 못했던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을 설명해주는 앨범이었다.

3집 [사람의 마음]에서는 로큰롤을 키워드로 사람의 마음을 잔잔하게 펼쳐냈다. 우울하고 어두운 마음,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 이별을 견디지 못해 슬퍼하는 마음까지. 4집은 진지하기보다는 재밌는 음악들이었다. 앨범의 타이틀과 동명의 곡인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부터 타이틀곡 ‘ㅋ’과 ‘괜찮아요’, ‘빠지기는 빠지더라’ 같은 곡에는 작사가로서의 장기하가 얼마나 뛰어난지 감탄하게 된다.

 

10년이 아무리 짧아도 어떻게 잊혀질 수가 있나

이런 장기하와 얼굴들을 좋아하던 팬들에게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소식이었을 것이다. “곧 발매될 5집은 장기하와 얼굴들의 마지막 앨범이 될 겁니다. (…) 그리고 2019년의 첫날을 기점으로, 저희 여섯 명은 각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팬들로서는 깜짝 놀랄만한 선언이었다.

홈페이지에서 전문을 읽을 수 있다.  http://kihafaces.com/

그들은 해체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번 음반은 장기하와 얼굴들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 될 거예요. 그건 다르게 말하면, 이제 장기하와 얼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가장 멋진 모습일 때 가장 아름답게 밴드를 마무리하기로, 저희 여섯 명은 뜻을 모았습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 이것보다 더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없기에 그만하겠다는 말이다. 박수칠 때 떠나겠다는 이야기이다.

쉬운 결정이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모든 멤버에게 말이다. 위에도 말했듯, 그들은 매 음반마다 변화를 보여주려 애썼다. 하지만 한 뮤지션이 해낼 수 있는 변화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아마 장기하와 얼굴들이 ADOY나 BYE BYE BADMAN, 실리카겔의 음악을 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그들이 하고 싶어 하리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팬으로서는 아쉽지만, 아마 그들의 판단과 의견을 존중하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을 것 같다.

 

팀 해체에 노련한 팬들이 어딨나요

장기하와 얼굴들은 ‘2세대 인디씬’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크라잉넛, 노브레인과 자우림, 언니네 이발관 이후 카우치 사건 이후 괴멸되어 가고 있었던 인디 씬에 나타난 단비 같은 존재. 장기하와 얼굴들과 비슷한 시기 데뷔한 검정치마와 국카스텐, 10cm와 브로콜리 너마저 등의 밴드들을 대표할만큼 음원과 티켓 파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후세대 밴드들에게 레퍼런스가 될만한 작업물들을 내놓는 밴드였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해체는 ‘2세대 인디씬’ 역시 조금씩 저물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음 세대는 누구일까. 아직 보이지 않는다. 새소년과 파라솔, 혁오와 카더가든, 치즈와 윤딴딴. 볼빨간 사춘기와 라이프앤타임. 인디씬에서 저마다의 영역을 확장해가며 개성 있는 음악을 보이는 뮤지션은 많지만 시대를 이끌고 있다거나, 시대의 상징이 될만한 음악을 하고 있다 말할 수 있는 이들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이 앞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조급해할 필요 없다. 말했던 그 ‘세대’가 끝나버린 것은 아니니까. 여전히 국카스텐은, 10cm는, 브로콜리 너마저는, 검정치마는,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으니까. 동시에 매해 새롭게 이전에 없던 것들을 만들어 나오는 뮤지션들이 데뷔하니까 말이다. 그들이 장기하와 얼굴들이 전혀 기억나지 않을 만큼의 멋진 음악을 들려주길 기대한다.

더불어 장기하와 얼굴들의 새로운 앨범을 기다린다. 최고의 음악이 무엇일지 상상하면서, 상상을 뛰어넘을 무언가가 나와주길 바라면서. 그렇다고 그들의 해체에 노련해질 수는 없겠지만.

굿바이, 트웬티스 타임라인

 

하이, 트웬티스 타임라인

글을 쓰고 싶었다. 뭐 하나 꿈 없이 방황하던 나에게, 잘 맞지 않는 전공 탓에 끙끙대던 나에게 글은 유일한 돌파구였다. 책을 읽고 혼자 글을 썼다. 영화를 보고 글을 썼다. 차곡차곡 쌓아 왔지만, 그래, 글은 도저히 직업으로 삼을만한 일은 아니었다. 대개 자기 책을 쓰겠다고 덤비는 풋내기 작가들의 말로는 처참했다. 굶거나, 포기하거나. 둘 다 바람직하지는 않았다.

직장인이 되고자 했다. 평범한 직장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 그러니까 [미생] 속에서 나올 것 같은 정말로 평범한 직장을 꿈꿨다. 하지만 [미생] 속 세상은 답답했다. 그 드라마는 지겹게도 현실과 맞닿아 있었다. 그런 현실을 이야기하는 글을 썼고, 꽤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 이런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외활동을 알아보았다. 제일 관심이 가던 곳은 그때 즐겨보던 [미스핏츠]라는 곳이었다.

그런데 웬걸, 지원공고는 기간이 코 앞이었다. 빠르게 포기했다. 다른 곳에 눈을 돌리니 [트웬티스 타임라인]이라는 매체가 보였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이가 그곳의 에디터로 글을 쓰고 있었고, 덕분에 나도 종종 보게 되었던 재미있지만 마냥 마음에 들지는 않는 매체였다. 무언가 좀 더 속 시원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한.

내가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자기소개서와 서류를 썼다. 그냥 살아온 날을 썼다. 지금의 나를 만든 일들을 서술했다. 얼떨결에 붙었다. 면접은 떨렸다. 무슨 소리를 했는지 나와서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놀랍게도 붙었다. 서강대에서 신입 에디터를 대상으로 한 교육이 열렸다. 그리고 그때 그곳에서 트웬티스 타임라인을, 편집장을 처음 만났다.

 

트웬티스 타임라인이 내게 준 것들

트웬티스 타임라인은 꽤 재밌는 매체였다. 고작 몇만 원 안 되는 활동비가 전부였지만 매주 토요일이 그렇게 기다려질 수 없었다. 처음 기획안을 써갔던 날을 기억한다. 헤어진 연인들을 위한 영화 속 장면 ○선, “그걸 대체 무슨 재미로 봐?” 축구 vs 야구, 당신은 당신 생각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다, 비정상으로 살아간다는 것, 누가 약팀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소튼을 보게 하라. 뭐 그런 말 같지도 않은 말들을 잔뜩 써갔다.

마지막 기획안이 기사로 채택됐고, 신나게 글을 써내려갔다. 잘 못 하는 영어로 기사를 해석해가면서, 정보를 찾아가면서, 때로는 날을 세워가면서. 첫 글은 엉망이었다. 하지만 이내 몇 번의 회의를 거치며 칼럼 내지 기사로 불릴 수 있을 만큼 다듬어져 있었다. 트웬티스 타임라인의 구성원들과 편집장의 피드백 덕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트웬티스 타임라인에서 글쓰기와 컨텐츠를 새로 배웠다. 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수백 개의 좋아요를 받고, 잘 보았다고, 좋은 글이라고, 고맙다는 반응을 받았을 땐 어리벙벙했다. 글이라는 게 이런 힘을 가진 매체였다. 나는 전혀 몰랐다. 글을 쓰자고 다짐했다. 글을 써서 먹고 살자고 다짐했다.

 

이 매체의 폐간은 우습고도 궁금한 일일 것이다

1년 정도의 활동을 마치고, 일자리를 고민하고 있을 때 편집장은 내게 이런 저런 일들을 소개해주었다. 즐겁고 기쁜 일은 아니었지만 월세가 급했던 내게는 큰 도움이었다. 안 풀리는 일이 있을 때는 짜잔,하고 나타나서 이런 저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약팀의 미래를 묻는다면 고개를 들어 소튼을 보게 하라 http://20timeline.com/1869

편집장 김도현. 그는 내게 세상의 모든 이치를 꿰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가끔 의견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대개 나의 말을 들어주었고, 나를 어여삐 여겼다. 그는 내게 은인이기도 했고, 나의 클라이언트이기도 했으며,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트웬티스 타임라인]은 7일, 일요일 부로 사라졌다. 편집장 김도현 때문이었다. 동시에 두 명의 에디터와 교제했다고 한다. 그 두 명의 동의는 물론 없었기에 그 관계를 다자연애로 정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가 져야 할 도덕적인 책임은 분명하다. 돈 대신 믿음이, 보상 대신 애정이 에디터들의 노력의 값이 되는 매체였으니, 신뢰가 무너진 이상 그가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매체의 폐간이 결정되었다. 사실 누군가에게는 우습고 궁금한 일일 것이다. 아니, 고작 바람을 피웠다고 매체의 폐간이 결정되다니. 우리가 모르는 숨겨진 무언가 있는 거 아니야? 뭐 물론 활동과 활동 사이에 조금씩 갈등이 쌓여왔을 수는 없겠지만 글쎄. 추측으로 끼워 맞춘 정의로 심판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잘 알겠으나 (댁들에게는) 아쉽게도, 그딴 거 없다.

 

매체 = 편집장?

트웬티스 타임라인은 김도현 전 편집장 그 자체였다. 기획과 기사 작성, 편집과 발행, 운영 과정에서 그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가 구성원의 의견을 얼마나 잘 들어주었느냐와는 무관한 이야기다. 그가 얼마나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었느냐와도 무관한 이야기이다. 다만 그는 대부분의 일을 혼자서 처리했다. 내가 낙서를 가져가면 그의 편집을 거쳐 그럴싸한 문장이 탄생했다. 사진 몇 장과 바이럴 문구를 덧붙인 글은 페이스북 뉴스피드를 여기저기 떠돌았다. 그건 모두 그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 역할을 누구에게도 주지 않았다. (어쩌면 주지 못했다.) 사람은 계속 바뀌고, 일은 점점 복잡해진 탓에 그 모든 걸 자신이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공유하지 않았던 것도 적지 않다. 트웬티스 타임라인이 어떤 자금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물어보았으나 에디터들에게 돈으로 부담감을 주고 싶지 않다며 이야기를 삼키던 그였다.

결국 트웬티스 타임라인은 그를 대신할 인물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숨겨왔던 그의 잘못이 드러났고, 매체는 폐간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가 했던 역할을 어색하게나마 해낼 수 있는 인물이 있었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매체가 폐간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누군가의 말들처럼 편집장의 연애사는 매체의 존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니까.

 

이 결말에는 배울 것이 있다

나는 많은 매체들이 이런 식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안다. 소위 뉴미디어 또는 대안 미디어라고 불리는 매체들이 보통 그렇다. (나는 그들 대부분을 언론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소수의 사람들에게 의존하고, 소수의 사람들이 끌고 가는, 그래서 그 소수의 사람들이 역할을 할 수 없을 때 버티고 버티다 사라지게 되는.

그들이 사람을 길러내는 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게 그들의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돈 몇 푼 안 되는 매체에서 다음 스타를 만들어낼 수는 있어도, 그 매체를 이끌어 갈 이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희생과 애정, 과로가 필요한 일이다. 트웬티스 타임라인은 (몇 사람들에 의하면) 우습게 끝나고 말았지만, 다른 곳들은 이를 이끌던 한 사람과 함께 끝나지 말아야 한다.

부디 이 결말이 누군가에게는 교훈이 되기를, 그것이 양다리를 걸치지 말자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 편집장이 양다리를 걸치고, 이것이 발각되고, 그 책임으로 물러나도 존속이 가능한 매체여야 한다.

더불어 트웬티스 타임라인에게 작별인사를 고한다. 내가 가장 열심히 글을 썼던, 그래서 가장 소중한 날의 땀들이 남아 있는 곳이다. 아마 누군가 찾을 날이 많지 않은 글들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매체의 페이지가 남아 있는 한 그 글들이 누군가에게 계속 말을 걸어주길, 그 누군가가 그 글로부터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기를.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고.

냄새나는 노래 – #01 1년 정거장

어떤 음악에는 어떤 추억이 깃들어 있다. 이를테면 그가 나에게 이별을 고하던 순간 카페에서 흘러나오던 김동률의 목소리, 변하지 않는 사랑을 다짐하며 불렀던 유재하의 노래 같은 것들. 그래서 어떤 음악은 듣는 순간 기억 저편에 묻어 두었던 어떤 시간이 너무나 또렷하게 생각나게 한다. 그때의 공간, 그때의 온도, 그때의 맛, 그때의 냄새까지. 그래. 어떤 음악에서는 가끔 냄새가 난다.


 

고등학교 1학년, 나는 은따였다

사실 왕따와 크게 구분 갈 것도 없다. 때린다던가 교과서를 숨기는 적극적이며 물리적인 따돌림은 없었지만, 나는 번번이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야 했고, 시답지 않은 이유로 비난의 눈초리를 받기에 십상이었다. 뭘 했길래 그렇게 되었느냐고? 글쎄. 여느 왕따가 그렇듯 대단한 이유는 없었다.

어떨 때는 쎈 척을 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오, 세상에. 무얼 얻기 위해 쎈 척씩이나 했다는 건가. 나는 그저 딜레이가 많고, 경험이 적은 사람이었을 뿐이다. 사소한 일로 시비를 걸어오는 동급생들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잠시 멍하니 쳐다본 게 다였다. 그 이후 나는 ‘쎈 척을 하는 애’가 됐다. 가진 것 이상의 허세를 떨며 누군가를 깔아뭉갠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마치 그 아이들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이런 걸 만들었더랬다.

어떨 때는 내 발음이 이유가 됐다. 힙합을 좋아했다. 따라 부르기도 했고, 가끔은 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Soul Company. P&Q나 키비, 에픽하이나 다이나믹 듀오 괕은. 그때 듣던 음악들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내 발음은 어딘가 각이 져 있었고, 톤의 변화가 적었다. 그 발음이 위의 이유와 맞물려 나는 그 1년 동안 힙합이나 좋아하며, 쎈 척을 하는 놈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그때의 힙합은 철저한 비주류 장르였고, the Quiett의 <Back on the Beats Mixtape Vol. 1>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음반이었다.

 

나를 따에서 벗어나게 한 것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문이과가 갈리며 나를 괴롭히던 이들과는 멀어졌지만, 나는 여전히 위축되어 있었고 남들 앞에 나서 무언가를 읽는 게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행여 이상하게 들릴까 봐, 내 발음이 틀린 것일까 봐. 항상 전전긍긍했다. 그러던 어느 날.

G-Dragon의 1집, [Heartbreaker]가 발매됐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앨범이었다. 그해 무려 128,755장이 판매되어 전체 음반판매량 1위를 차지했지만, 타이틀곡 Heartbreaker는 Flo Rida의 Right Round라는 곡의 플로우를 표절했다는, 지금 생각해보면 얼토당토않은 의혹1)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어떤 논란이 있건, 나는 그 앨범에 있는 곡들을 열심히 따라 불렀다. 타이틀곡인 Heartbreaker, 서브타이틀인 Breath, 묘한 멜로디가 인상적이었던 Butterfly와 1년 정거장까지. 부르고 부르고, 다시 불렀다. 빅뱅의 팬도 아니었던 내가 왜 그랬을까.

어쩌면 내 안에 남은 트라우마를 씻어내 버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남들 앞에서 위축되는 그 느낌이 싫어서,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그 억양을 지워버리고 싶어서. 톤의 높낮이 변화가 많고, 조금 더 당당해 보이는 그의 노래를 불렀다. 그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나는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발음과 억양으로 놀림 받지 않게 되었다.

 

내가 서 있는 1년 정거장 세상이 우릴

그런 의미에서 G-Dragon의 [Heartbreaker]는 내게 꽤 특별하고 소중한 음반이다. 아주 특별하지는 않을지라도 쉽게 잊히지는 않을 음반. 내가 가진 우울을 잠시나마 이겨낼 수 있게 했던 음악이니까. 그런데 왜 타이틀이나 후속곡도 아니고, rap이 아니라 sing이 곡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1년 정거장을 골랐느냐고? 여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1년 정거장’은 자신을 기다리는 팬들을 위해 부르는 G-Dragon의 팬 송이다. 이 곡의 가사에는 팬들을 향한 그의 절절한 마음이 녹아 있다. “널 일으켜주고 싶어 but 그럴 힘이 없어 이런 내 자신이 싫어 긴 기다림에 지쳐 비록 몸은 멀리 있더라도 맘은 변치 말자고. 이건 헤어짐이 아닌걸, 아주 잠깐의 휴식인걸.” 사랑하는 사람과 아주 오랜 기간 떨어져 있게 된 한 사람의 마음을 잘 그려낸 가사가 인상적이다.

추억 속에 묻어 두었던 이 노래의 가사를 다시 꺼내게 된 건, 어떤 연애 때문이었다. 그 연애는 서툴렀고, 급박했고, 낯설었고, 어려웠다. 사랑하는 사람과 아주 오랜 시간을 떨어져 있어야 했고, 나는 이를 잘 견디지 못했다. 보고 싶은데 볼 수 없고, 그 오랜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조차 안 가는 그런 느낌. 나는 그쯤 이 노래를 즐겨 들었다. 말할 수가 없어. 널 붙잡을 수가 없어. 참았던 눈물을 떨리던 입술을 보고도 모른 척해야 해.

내 신경은 오로지 그 연애에 쏠려 있었다. 매일 같이 그리워했고 매일 같이 울었다. 그런 날들의 한복판에서 어떤 친구를 만났다. 현명한 친구였고, 생각이 깊은 친구였다. 내가 많은 걸 털어놓지 않았지만 그는 내 말에 공감해주었다. 꽤 자주 만났고, 그 친구와 만난다는 것 자체가 안정감을 주었다.

 

최루액 냄새가 나는 노래

5월 1일. 노동절이었다. 집회에 갔다. 휴일이었고, 세월호가 침몰한 지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은 시점이었다. 많은 이들이 노란 리본을 달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집회를 마치고 행진이 있었다. 안국역쯤 갔을까. 얼마 안 가 경찰버스가 시민들을 에워쌌다. 최루액이 뒤섞인 물대포가 시민들을 향해 발포되었다. 매캐한 냄새가 머리를 울렸다. 연신 기침과 재채기가 나왔다.

 

최루액은 시민들의 얼굴을 향해 분사되었다. ⓒ 프레시안 최형락

시간이 흘러 새벽에 가까워졌다. 그 집회에 그 친구 역시 나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잠깐 만날까. 그래. 어디야. 나는 맥도날드 앞. 그럼 거기서 보자. 여전히 경찰버스는 참가자들을 막고 있었고, 도로에는 최루액 냄새가 가득했다. 눈에 들어간 최루액을 씻어내고 츄러스를 하나씩 나누어 먹었다. 단 설탕 내음이 입을 매웠다. 다시 길거리에 나와 함께 음악을 들었다.

그 친구는 선우정아의 ‘비온다’를 들려주었다. 비 온다. 비 온다. 비 온다. 모두 입을 벌려. 왠지 최루액 쏟아지는 곳에서 들을 노래는 아닌 것 같다. 그치. 요새 자주 듣는 노래야. 뭔데. 지드래곤. 틀어봐. 내가 서 있는 1년 정거장. 세상이 우릴 질투했다고 생각해. 1년 정거장. 그곳에선 널 느낄 수 있어. 왜 듣는지 알겠다. 그치. 완전 소년 감성이네. 그런가. 그런 대화를 몇 번 주고받았다.

그대가 없는 텅 빈 정거장. 세상이 우릴 질투했다고 생각해. 몇 마디를 더 흥얼거렸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까끌한 설탕 냄새에 섞인 최루액의 냄새를 맡는다. 안타깝게도 썩 좋은 냄새는 아닌 셈이다.

 

 

1) 트랩이 유행하던 14-15년, 얼마나 식상한 플로우가 양산됐는지를 떠올려 보자. (그 랩들의) 오리지널리티가 부족하다고 비판할 수 있을지언정, 그것을 표절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페이스북 바깥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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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페이스북은 다른 삶을 보여준다. 다른 문화를 보여준다. 그렇기에 무척 열려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를 비추는 시선은 무척 단조롭고, 폐쇄적이다. 이를 바라보는 주변인들의 시선을 흡수할 수밖에 없다. 좋아요는 이 시선의 권력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2. 더불어 이곳에는 수없이 많은 삶이 기록되어 있다. 오늘 먹은 점심 메뉴처럼 사소하기 그지 없는 것부터, 나조차 잘 기억나지 않아 손을 더듬어야 하는 지난 연애의 역사, 졸업과 입학, 취업, 응원하는 스포츠 팀의 성적 또 누군가의 죽음과 그 죽음을 추모하기 위한 계정까지. 페이스북은 삶을 먹으며 멈추는 법을 모른 채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페이스북이 싸이월드가 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나.

3. 페이스북 바깥을 고민한다. 그것이 트위터라든가, 인스타그램이라는 허무한 결말은 아닐 것이다.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일 리도 없다. 다만 좀 더 긴 글을 담을 수 있고 생각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어쩌면 잘못된) 의견에 영향을 되도록 적게 받을만한 것이 무엇인가.

4. 대답은 블로그였다. 완벽하지는 않다. 사람들이 블로그에 들어와 글을 읽게 하기까지가 무척 어렵다. 결국 그 중간 다리에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가 있어야 한다. 이 시도가 얼마나 성공적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선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