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것들에게서 나는 냄새

해당 게시물에는 영화 [기생충]에 대한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영화를 아직 감상하시지 않은 분들 중 영화 내용 및 결론에 대한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은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 주세요.


“아랫것들은 냄새가 나.”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이 어렸을 때부터 듣고 자란 말이다. 그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자신이 자연스레 몸으로 느끼는 혐오감을 고백한다. 그는 이어 이렇게 진술한다. “평균적인 중산층 사람이 노동 계급은 무식하고, 게으르고, 술꾼이고, 상스럽고, 거짓말쟁이라 믿도록 교육받고 자란다 해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더러운 존재라 믿도록 교육받는다면 대단히 해로운 일이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가난한 이에게는 냄새가 난다. 아니, 악취가 난다. 향수나 디퓨저, 캔들로도 쉽게 가릴 수 없다. 뼛속 깊이 새겨지고, 장기에 깊게 배인 냄새이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는 이런 냄새에 관한 영화이다. 자신이 아래에서 부리는 이들이 필요 이상으로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싫어하는 박 사장(이선균)은 그의 기사 기택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다른 건 선을 넘을 듯 안 넘을 듯 결국 안 넘어서 좋은데, 냄새가 선을 넘어.”

그는 기택의 냄새를 이런 단어를 들어 설명한다. 노인 냄새, 지하철 타면 나는 냄새, 행주 삶는 냄새, 오래된 무말랭이 냄새. 그는 박 사장과 연교가 냄새를 언급할 때마다 스스로의 옷에서 냄새를 맡으려 애쓴다. 그는 스스로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을까. 아마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반지하에서 꾸물꾸물 올라오는 냄새이기 때문이다. 그 자신의 환경에 이미 깊게 밴 냄새이기 때문이다.

 

반지하의 냄새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분명 박 사장의 집에서도, 그의 가족들에게서도 어떤 냄새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 냄새는 선을 넘지 않는다. 부유한 자의 냄새는 달콤하고, 향기롭고, 은은하다. 하층 계급의 냄새는 악취가 되지만 상층 계급의 냄새는 향이 된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집은 비릿한 곰팡이 냄새가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다. 봉준호 감독은 거실의 통유리로 햇살이 쏟아지는 박 사장의 집과 반지하인 기택의 집을 비교하며 이것이 “빈부격차의 정점”이라고 말한다.

 

다송이 기택네 식구더러 ‘같은 냄새’가 난다고 이야기했던 일을 두고 그들은 고민을 시작한다. 섬유유연제를 바꾸어야 하나, 다 다른 걸 써야 하나 하고. 그러나 기정은 그 냄새가 “반지하 냄새”라며 이곳을 벗어나지 않으면 그 냄새가 가시지 않을 것이라 설파한다. 실로 그렇다. 10평 남짓한 반지하방에서 자취하던 시절, 온 집안의 벽지에는 곰팡이가 눌러 붙었다. 벽지에만 그친 것은 아니었다. 내 몸에도, 식기와 가구에도, 옷에도 그 꿉꿉한 냄새가 들러 붙었다. 꽤 비싼 디퓨저를 두어봤지만, 그 특유의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처럼 아마 집을 바꾸더라도 그 냄새는 꽤 오랫동안 그들을 따라다녔을 것이다. 그들의 옷과 가구와 몸에 기생하면서. 그 냄새가 단지 반지하 방에서 풍기던 비릿함이었을리는 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대개 아프기 마련이다. 병원에 가기조차 꺼린다. 큰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두려워서, 검진에 드는 비용조차 아까워서.

 

냄새의 아비투스

입 냄새의 80%는 설태, 충치, 치석, 치주염과 같은 치과 질환으로 발생한다. 호흡장기나 소화장기에 질병 또한 마찬가지다. 장과 간장 사이의 순환이 원활하지 않으면 체내 영양 흡수에 문제가 생긴다. 이것이 혈액으로 흡수되면 구취나 체취가 생겨난다. 간장 기능이 저하되면 냄새의 원인 물질이 혈류를 타고 온몸을 흘러 다닌다. 가난한 자는 냄새의 원인을 찾을 기회조차 없다.

 

씻는 습관조차 가난한 자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물값이 아까워 매일 샤워하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몸을 씻을 온수란 것은 찬 물을 어떻게든 끓여서 겨우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아니, 어떤 이들에게는 씻을 공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냄새를 씻어내지 못한 이들은 결국 ‘가난한 티’를 내게 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상류층과 하류층을 구분하는 건 단지 ‘자본’이 아님을 설명하며 ‘문화자본’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구별짓기) 이 문화자본은 인간의 몸에 깊게 베인 생활습관과 취향, 말투와 인지 능력을 통해 나타난다. 학력과 자격을 뜻하는 사회자본, 인맥을 의미하는 사회관계자본 또한 상류층과 하류층을 구분 짓는 단서다. 기태의 가족은 사회관계자본과 사회자본은 그럴 듯하게 속여냈지만, 이 냄새라는 아비투스는 쉽게 바꾸어내지 못했던 모양이다.

 

“계급구분이라는 것은 아주 잔인한 매커니즘이다. 졸부는 아무리 많은 돈을 벌게 된다 하더라도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무산 계급의 촌티를 쉽사리 벗어 버릴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생선용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할 줄도 모르며, 자기의 페라리 뒷유리창에 원숭이 인형을 매달아 둘 것이고, 전용제트기의 계기판에는 성 크리스토포로의 조각상을 올려 놓을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계급구분이라는 것은 아주 잔인한 매커니즘이다. 가난한 이에게만 나는 이 냄새는, 아주 잔인한 것이다.

 

근근이 버텨볼 뿐이다

이야기의 종점에서, 기택은 박 사장 저택의 지하로 숨어들고 기우는 아버지를 구해내기 위하여 부자가 되어 그 집을 사고야 말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변변한 학벌도 없는 그가 학벌조차 실패하는 시대에 그만큼의 돈을 벌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수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대단한 운이 따라야 할 것이다. 로또 한 번 당첨되는 정도로는 그 집을 살 수 없다. 아마 관객도, 감독도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는 현실에서 가난을 벗어나 부자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들에게도 똑같이 들리는 이야기이다. 아마, 안 될 것이라고. 영화 속 대만 카스테라 집을 열었던 기택과 근세 역시 모두 비슷한 꿈을 꿨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꿈은 방공호를 향해 내려가는 계단처럼 끝까지 곤두박질칠 뿐.

가난한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함께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대답은 원론적일 뿐, 현실적이지는 못하다. 대개 우리는 기택과 근세처럼 적대적일 뿐이다. 우리는 똑같이 대만 카스테라 집을 열 것이고, 함께 망할 것이며, 서로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 골몰할 것이며 또 그 이후에도 똑같이 가난할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든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붙잡은 채로 근근이 버텨볼 뿐이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붙잡은 채로 근근이 버텨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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