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나에게 버텨낼 문장을 주었듯이

허지웅 작가가 지난 12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투병 사실을 알려왔다. “악성림프종 진단을 받았습니다. 혈액암의 종류라고 합니다. 붓기와 무기력증이 생긴지 좀 되었는데 미처 큰 병의 징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주부터 항암치료를 시작했습니다. <버티는 삶에 관하여>에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함께 버티어 나가자’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삶이란 버티어 내는 것 외에는 도무지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마녀사냥]에 출연했던 얼마간 이후부터, 브라운관에 비친 그의 얼굴은 퉁퉁 불어 있었다. 그 때문에 그는 ‘성형 의혹’을 받으며 필러와 보톡스 탓이라는 악플을 감수해야 했다. 그는 [미운 우리 새끼]에서 무기력증을 호소하며 비뇨기과를 찾기도 했다. 병원은 그에게 ‘남성 갱년기’라는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제 와 고백하자면, 나는 그의 꽤 큰 팬이었다. 그의 애티튜드가 어떻건 그의 글을 좋아했다. 그의 생각이 어떻건, 그의 글은 읽는 재미가 있었다. 처음 읽었던 그의 글은 대학내일에 연재되던 [개포동 김갑수 씨의 사정]이라는 소설이었다. 유쾌하고 진부한 이야기지만 그의 문장은 정갈했고, 표현은 새로웠다. 어느 순간 대학내일에 그의 글이 연재되지 않았고, 이유가 궁금했다. 그의 블로그에 들어가 그것이 어떤 기독교 단체의 항의 때문임을 접했다.

황당했고 아쉬웠다. 아쉬웠던 만큼 그의 블로그를 열심히 들락거렸던 것 같다. 얼마 후 그를 JTBC [썰전]과 [마녀사냥]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여러 신문과 잡지, 또 책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와 같은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읽는 맛이 있는 글, 울림을 줄 수 있는 글,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글, 그런 글.

하지만 동시에 생각했다. 글을 쓰는 삶이 쉬울 리가 없다고, 글로 벌어 먹고 살 방법이 없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글을 쓰는 일은 내게 여전히 즐거운 일이었다. 허지웅 작가가 블로그에 쓴 글, ‘버티라’는 말은 그런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작가로 살아남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작가로 살아남지 못한 이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끝까지 버티어 내다보면 살아남아 마침내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갖게 될 것이라고.

글쓰기와 관련된 대외활동을 시작했고, 대외활동으로 알게 된 인연이 (인턴과 마찬가지인 일이었지만) 직업으로 이어졌다. 허지웅 작가가 한때 일했던 곳이었다. 함께 기자 생활을 했다던 상사도 있었다. 일은 고됐다. 정시퇴근은 먼 일이었다. 매일 컨펌과 수정 사이에서 진땀을 흘려야 했다. 한숨이 늘었고, 군살도 늘었다. 늦은 시간 퇴근하고 먹을 건 야식뿐이었다.

그만둘까 싶었다. 그만두고 싶었다. 월 30의 월세와 5만원 남짓의 공과금, 생활비를 감당할 자신은 없었지만, 매일 악몽을 꾸는 삶보다는 낫겠다 싶었다. 생일이었다. 컨펌이 나질 않았다. 아홉 시, 열 시, 열한 시, 열두 시. 생일이 끝났다. 열두 시 반쯤이 되어서야 겨우 직장 문 밖을 나설 수 있었다. 밖에서는 애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와락 안았다. 카페에 가 선물을 열어 보았다. 마음이 먹먹해졌다. 허지웅 작가의 [버티는 삶에 관하여]가 놓여 있었다. 편지지를 사지 못해 던킨도너츠 영수증지에 쓴 절절한 편지 한 통과 함께. 5개월 남짓 남았던 계약기간을 그 책과 편지를 보며 버텼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자 이를 악물었다.

삶이 힘들어지는 날에는 그 책을 손에 들었다. 같이 버티어 내자는 그 부분을 몇 번을 반복해 읽었다. 그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여태껏 잘 버텨왔다. 얼마나 더 버티어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허지웅 작가의 투병 소식을 들었을 때 맘이 아렸던 데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 그가 20대 초반 이후의 내 삶에 있어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쳐온 사람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책 한 구절을 다시 중얼거렸다. “마음속에는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문장을 한 가지씩 준비해놓고 끝까지 버팁시다. 우리의 지상 과제는 성공이나 이기는 것이 아닌 끝까지 버텨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버티고 버텨서 다음 세대에게 후하고 창피하지 않은 우리가 됩시다.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고 버텨 남 보기에 엉망진창이 되더라도 나 자신에게는 창피한 사람이 되지 맙시다.”

그가 걸린 병이 얼마나 큰 병인지, 나는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항암, 어려운 일이고, 아픈 일이다. 암으로 스러져 간 이들을 나는 많이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암도 암이지만, 항암의 과정을 견디기 힘들어 했다. 나는 그에게 병마와 싸워 이겨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가, 그가 할 수 있는만큼 끝까지 버티어 내기를 기원한다. 그가 나에게 지켜내고 버텨낼 문장을 주었듯, 나는 그에게 먼발치서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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