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ep, 너와 나 사이의 아주 적당한 경계선

Hi there 인사해 호들갑 없이

2008년 9월 미아라는 곡으로 데뷔한 뒤 무려 10년이다. 10년의 세월 간 아이유가 쌓아온 것은 결코 적지 않다.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강조한 곡들,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이라는 고백으로 국민여동생의 자리를 굳혔으나, 그는 더 이상 여동생, 아이돌 가수로 남아 있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이제 누구도 아이유에게 이런 걸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Modern Times]의 수록곡 금요일에 만나요와 싱글 [마음]을 통해 자신의 프로듀싱 능력을 시험하더니, 이내 자신이 프로듀서를 맡은 미니앨범 [CHAT-SHIRE]를 발표한다. 이 앨범에서 아이유는 누구도 쉽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한다. 가수 혹은 엔터테이너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그런 자신에 대한 시선들에 하나하나 반박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을 통해서가 아닌, 자신의 앨범을 통해서.

그는 아이돌로 시작했지만 아티스트로 거듭났다1). 남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뿐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아이유의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는 싱글 [삐삐]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번 곡을 통해 10주년을 함께해 온 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건네는 대신, ‘아이유’를 향한 사람들이 시선에 대응한다. 삐삐(Beep Beep) 소리를 내면서.

 

이 선 넘으면 침범이야 매너는 여기까지

“쟤는 대체 왜 저런 옷을 좋아한담. 기분을 알 수 없는 저 표정은 뭐람. 태가 달라진 건 아마 스트레스 때문인가. 걱정이야 쟤도 참.” 가사에서 알 수 있듯 이 곡은 ‘스물셋’의 연장 선상 위에 있다. [CHAT-SHIRE]에서는 타이틀곡 ‘스물셋’을 통해 자신을 향한 대중들의 이중적 시선을 비웃으며 자신이 ‘여우인지 곰인지’ 맞춰보라고 이야기했던 그다. 무언가 날이 선 듯 보였던 아이유였지만 그는 지난 앨범 [Pallete] 이후 한층 여유로워졌다.

 

“스킨십은 사양할게요 back off back off 이대로도 좋아요 balance balance (…) Hello StuPID 이 선 넘으면 ” 그는 오지랖 넓은 이들을 애써 비웃기보다, 그들에게 한 걸음 물러서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선을 넘어 자신에게 ‘이래라저래라’하는 이들에게 분명한 경고음을 날린다. 하지만 이 곡이 연예인과 그를 둘러싼 대중들의 관계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경계선을 허물기 위해 다가오는 이들뿐 아니라, 자신의 경계선을 먼저 거둬들이며 다가오는 이들 역시 거부한다. “I don’t care 당신의 비밀이 뭔지 저마다의 사정 역시 정중히 사양할게요 not my business”라고 노래하면서 말이다. “나는 지금도 충분히 피곤해. 까만 속마음까지 보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했던 전작 ‘안경’에서도 읽을 수 있는 정서다.

 

그 선 넘으면 정색이야 거리 유지해

그가 이런 가사를 써내기까지 어떤 심정이었을까.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들어야 했을 질책이 충분히 짐작이 간다. 관심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관심에 비례하는 양의 무례를 마주한다. 때로는 그의 책임이 아닌 일조차도 그에게로 돌아간다. 관심을 보여달라고 하는 이들은 얼마나 많을까. 스타에게서 받은 관심을 훈장처럼 여기며, 관심을 받기 위해 기어코 이상해지고야 마는 사람들이 있다. 트위치에 널린 저격 유저들을 보라.

크기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이런 이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이런 종류의 무례한 경계 허물기는 빈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쉽게 겪게 되는 일이다. 걱정해주는 척 건네는 오지랖들이 대개 그렇다. “이제 슬슬 결혼할 준비 해야지.” “취직준비는 잘하고 있니, 요새 어렵다는데 걱정이네.” “그렇게 살이 쪄서 어떡하니.” 따위의 말들. 그런 걱정이 허락된 관계가 아니라면 그건 공격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알아서 잘 할게요…

‘나와 너’라는 관계에서 허락된 것 이상의 것을 요구하고, 또 이해 받길 원하는 사람들. 자신의 다름을 드러내 특별함을 전시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이제 통성명을 한 사이에 맥락 없이 자신의 고통과 기구함을 늘어놓는 사람들. 전자의 이들이나 후자의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욱 명확한 경계선뿐이다. 선을 긋는 것이 악역을 자처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되니까.

 

We don’t know each other

이런 종류의 경계 허물기에 어울리는 수식어는 딱 하나다. 무례함. 이는 지독히도 무례한 일이다. 관계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자신의 판단과 감각에 근거해 타인의 삶에 함부로 난입해, 정해놓은 경계와 규칙을 실컷 깨어 놓기 때문이다.

무작정 가깝고 격 없는 것이 ‘좋은 관계’임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모든 관계에는 적당한 거리가 있고, 그 거리는 그 관계의 깊이와 시간만큼 좁혀지기 마련이다. 상대방의 선 안으로 들어가는 것, 상대방을 나의 선 안으로 초대하는 것 모두 그 상대의 동의가 필요한 일이다.

무리해서 경계선을 넘지 말 것. 함부로 그 선을 넘어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를 곤란하게 하지 말 것. 놀랍도록 당연한 이야기다. 놀랍도록 잘 지켜지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를 하나의 인간으로서 존중한다면, 그가 그은 경계도 면밀히 살필 것. 당신의 나라는 아직 EU에 가입하지는 않은 모양이니까.

 

1) 위 두 개를 등치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돌인 아티스트도, 아티스트인 아이돌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돌로 출발한 이가 아티스트가 되어간다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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