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트웬티스 타임라인

 

하이, 트웬티스 타임라인

글을 쓰고 싶었다. 뭐 하나 꿈 없이 방황하던 나에게, 잘 맞지 않는 전공 탓에 끙끙대던 나에게 글은 유일한 돌파구였다. 책을 읽고 혼자 글을 썼다. 영화를 보고 글을 썼다. 차곡차곡 쌓아 왔지만, 그래, 글은 도저히 직업으로 삼을만한 일은 아니었다. 대개 자기 책을 쓰겠다고 덤비는 풋내기 작가들의 말로는 처참했다. 굶거나, 포기하거나. 둘 다 바람직하지는 않았다.

직장인이 되고자 했다. 평범한 직장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 그러니까 [미생] 속에서 나올 것 같은 정말로 평범한 직장을 꿈꿨다. 하지만 [미생] 속 세상은 답답했다. 그 드라마는 지겹게도 현실과 맞닿아 있었다. 그런 현실을 이야기하는 글을 썼고, 꽤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 이런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외활동을 알아보았다. 제일 관심이 가던 곳은 그때 즐겨보던 [미스핏츠]라는 곳이었다.

그런데 웬걸, 지원공고는 기간이 코 앞이었다. 빠르게 포기했다. 다른 곳에 눈을 돌리니 [트웬티스 타임라인]이라는 매체가 보였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이가 그곳의 에디터로 글을 쓰고 있었고, 덕분에 나도 종종 보게 되었던 재미있지만 마냥 마음에 들지는 않는 매체였다. 무언가 좀 더 속 시원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한.

내가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자기소개서와 서류를 썼다. 그냥 살아온 날을 썼다. 지금의 나를 만든 일들을 서술했다. 얼떨결에 붙었다. 면접은 떨렸다. 무슨 소리를 했는지 나와서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놀랍게도 붙었다. 서강대에서 신입 에디터를 대상으로 한 교육이 열렸다. 그리고 그때 그곳에서 트웬티스 타임라인을, 편집장을 처음 만났다.

 

트웬티스 타임라인이 내게 준 것들

트웬티스 타임라인은 꽤 재밌는 매체였다. 고작 몇만 원 안 되는 활동비가 전부였지만 매주 토요일이 그렇게 기다려질 수 없었다. 처음 기획안을 써갔던 날을 기억한다. 헤어진 연인들을 위한 영화 속 장면 ○선, “그걸 대체 무슨 재미로 봐?” 축구 vs 야구, 당신은 당신 생각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다, 비정상으로 살아간다는 것, 누가 약팀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소튼을 보게 하라. 뭐 그런 말 같지도 않은 말들을 잔뜩 써갔다.

마지막 기획안이 기사로 채택됐고, 신나게 글을 써내려갔다. 잘 못 하는 영어로 기사를 해석해가면서, 정보를 찾아가면서, 때로는 날을 세워가면서. 첫 글은 엉망이었다. 하지만 이내 몇 번의 회의를 거치며 칼럼 내지 기사로 불릴 수 있을 만큼 다듬어져 있었다. 트웬티스 타임라인의 구성원들과 편집장의 피드백 덕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트웬티스 타임라인에서 글쓰기와 컨텐츠를 새로 배웠다. 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수백 개의 좋아요를 받고, 잘 보았다고, 좋은 글이라고, 고맙다는 반응을 받았을 땐 어리벙벙했다. 글이라는 게 이런 힘을 가진 매체였다. 나는 전혀 몰랐다. 글을 쓰자고 다짐했다. 글을 써서 먹고 살자고 다짐했다.

 

이 매체의 폐간은 우습고도 궁금한 일일 것이다

1년 정도의 활동을 마치고, 일자리를 고민하고 있을 때 편집장은 내게 이런 저런 일들을 소개해주었다. 즐겁고 기쁜 일은 아니었지만 월세가 급했던 내게는 큰 도움이었다. 안 풀리는 일이 있을 때는 짜잔,하고 나타나서 이런 저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약팀의 미래를 묻는다면 고개를 들어 소튼을 보게 하라 http://20timeline.com/1869

편집장 김도현. 그는 내게 세상의 모든 이치를 꿰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가끔 의견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대개 나의 말을 들어주었고, 나를 어여삐 여겼다. 그는 내게 은인이기도 했고, 나의 클라이언트이기도 했으며,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트웬티스 타임라인]은 7일, 일요일 부로 사라졌다. 편집장 김도현 때문이었다. 동시에 두 명의 에디터와 교제했다고 한다. 그 두 명의 동의는 물론 없었기에 그 관계를 다자연애로 정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가 져야 할 도덕적인 책임은 분명하다. 돈 대신 믿음이, 보상 대신 애정이 에디터들의 노력의 값이 되는 매체였으니, 신뢰가 무너진 이상 그가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매체의 폐간이 결정되었다. 사실 누군가에게는 우습고 궁금한 일일 것이다. 아니, 고작 바람을 피웠다고 매체의 폐간이 결정되다니. 우리가 모르는 숨겨진 무언가 있는 거 아니야? 뭐 물론 활동과 활동 사이에 조금씩 갈등이 쌓여왔을 수는 없겠지만 글쎄. 추측으로 끼워 맞춘 정의로 심판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잘 알겠으나 (댁들에게는) 아쉽게도, 그딴 거 없다.

 

매체 = 편집장?

트웬티스 타임라인은 김도현 전 편집장 그 자체였다. 기획과 기사 작성, 편집과 발행, 운영 과정에서 그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가 구성원의 의견을 얼마나 잘 들어주었느냐와는 무관한 이야기다. 그가 얼마나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었느냐와도 무관한 이야기이다. 다만 그는 대부분의 일을 혼자서 처리했다. 내가 낙서를 가져가면 그의 편집을 거쳐 그럴싸한 문장이 탄생했다. 사진 몇 장과 바이럴 문구를 덧붙인 글은 페이스북 뉴스피드를 여기저기 떠돌았다. 그건 모두 그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 역할을 누구에게도 주지 않았다. (어쩌면 주지 못했다.) 사람은 계속 바뀌고, 일은 점점 복잡해진 탓에 그 모든 걸 자신이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공유하지 않았던 것도 적지 않다. 트웬티스 타임라인이 어떤 자금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물어보았으나 에디터들에게 돈으로 부담감을 주고 싶지 않다며 이야기를 삼키던 그였다.

결국 트웬티스 타임라인은 그를 대신할 인물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숨겨왔던 그의 잘못이 드러났고, 매체는 폐간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가 했던 역할을 어색하게나마 해낼 수 있는 인물이 있었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매체가 폐간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누군가의 말들처럼 편집장의 연애사는 매체의 존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니까.

 

이 결말에는 배울 것이 있다

나는 많은 매체들이 이런 식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안다. 소위 뉴미디어 또는 대안 미디어라고 불리는 매체들이 보통 그렇다. (나는 그들 대부분을 언론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소수의 사람들에게 의존하고, 소수의 사람들이 끌고 가는, 그래서 그 소수의 사람들이 역할을 할 수 없을 때 버티고 버티다 사라지게 되는.

그들이 사람을 길러내는 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게 그들의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돈 몇 푼 안 되는 매체에서 다음 스타를 만들어낼 수는 있어도, 그 매체를 이끌어 갈 이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희생과 애정, 과로가 필요한 일이다. 트웬티스 타임라인은 (몇 사람들에 의하면) 우습게 끝나고 말았지만, 다른 곳들은 이를 이끌던 한 사람과 함께 끝나지 말아야 한다.

부디 이 결말이 누군가에게는 교훈이 되기를, 그것이 양다리를 걸치지 말자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 편집장이 양다리를 걸치고, 이것이 발각되고, 그 책임으로 물러나도 존속이 가능한 매체여야 한다.

더불어 트웬티스 타임라인에게 작별인사를 고한다. 내가 가장 열심히 글을 썼던, 그래서 가장 소중한 날의 땀들이 남아 있는 곳이다. 아마 누군가 찾을 날이 많지 않은 글들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매체의 페이지가 남아 있는 한 그 글들이 누군가에게 계속 말을 걸어주길, 그 누군가가 그 글로부터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기를.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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