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자 경기도지사를 바라며

“저희가 잘 안 들립니다.”

“저희가 잘 안 들립니다.”

13일 늦은 저녁, 이재명 경기도지사 당선인은 당선 소감을 묻는 MBC와의 인터뷰를 이렇게 끝냈다. 인이어가 잘 안 들린다고 이야기했지만 그것이 실제로 잘 들리지 않아서가 아님은 그 방송을 보는 모든 이가 알 수 있었다. MBC 이전의 몇 차례 당선 인터뷰에서 이재명 당선인은 한 질문에 대해 유독 날카롭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바로 한 배우와의 스캔들에 대한 질문이었다. 배우는 2010년부터 꾸준히 이재명 당선인과의 관계를 주장해왔고, 이 당선인은 이를 꾸준히 부인해 왔다. 오래된 관계였다. 증거가 있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곧 증거 없음은 주장을 쉽게 기각해버릴 증거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의혹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이재명 도지사 당선인은 선거 기간 내내 같은 의혹에 시달려야 했다.

ⓒ노컷TV

그래서였을까. 이재명 당선인은 인터뷰 현장에서 이렇게 소리쳤다. “안 돼! 엉뚱한 질문을 자꾸 해서 안 돼! 약속을 어기기 때문에 다 인터뷰 취소해! 여기까지만 하고, 이것도 인터뷰하다 딴 얘기하면 끊어버릴 거야. 내가 끊어버릴 거야. 예의가 없어. 싹 다 어겼어. 예의가 없어. 다 커트야!”

“대변인! 이거 하고 더 하지 마!”

그러니까,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 이재명 당선인은 인터뷰 질문에 대해 방송사와 어떤 약속을 했고, 언론이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인터뷰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 부분. 이재명 당선인이 언론을 대하는 태도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인지도 모른다.

그는 받고 싶지 않은 질문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듣고 싶은 질문만 듣겠다는 것,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매번 사전에 협의된 질문만 받았고, 짜인 답변만 했다. “대한민국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 번 해보세요. 다 어디 갔나? 저 중동에 갔다고.” 그렇게 해서 나온 답변조차 하나하나 주옥같았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이재명 당선인이 박 전 대통령이다, 뭐 그런 소리는 아닙니다… ⓒ한국일보

언론은 정해진 질문을 하기 위한 들러리가 아니다. 공익에 부합하고, 시민이 원한다면 어떤 자리에서건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청와대 기자단이 당시 ‘기레기’라며 비판받았던 이유 역시, 언론답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해진 질문만 했기 때문이다. 권력과 유착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불필요한 예의를 지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은 그래서는 안 되고, 정치인은 언론을 그렇게 대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어디서 고소한 냄새 안 나요? 경기도청 쪽인가?

이재명 당선인은 자신을 향한 공격이라고 여기는 것을 대할 때, 거리낌이 없었다. 지난 17년 1월, 자신에 대한 허위보도를 한 TV조선에 대해 형사고소하는 한편, “폐간시킬 것”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뿐만 아니다. 자신에 대해 일베 관련 의혹을 제기한 네티즌 4명을 경기도지사 선거 과정에서 고소한 바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이재명은 성남시장으로 재직 당시 LH 공사와의 재개발 사업 과정에서 일어났던 시위의 참가자 70명을 공무집행방해로 고소하기도 했다.

이재명은 지난 대선 경선 과정 이전부터 ‘고소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SBS

언급한 부분이 전부는 아니지만, 기사의 여백이 너무 좁아서 굳이 옮기지는 않겠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이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 당선인이 변호사 출신이라 법을 잘 알고 계신다는 점은 잘 알겠다.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이가 시민을 향해 법을 휘두를 수는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수가 의사를 결정하는 것’ 자체가 아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는 90여 개 나라의 인권 실태를 분석한 2017년 연례 보고서에서, 현행 명예훼손죄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키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자. 세계적으로 명예훼손죄는, 권력의 반대편에 선 이들을 옥죄는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2017년 국경없는기자회가 발표한 한국 언론 자유지수를 보자. 63위다. 시민들이 나서 주권을 쟁취했던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에 어울리지 않는 순위다. 낮은 점수를 받은 가장 큰 이유는, 명예훼손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언론인이 스스로를 자기검열 해왔다는 것이다.

2018년 발표된 순위에서 한국은 43위로 무려 20계단을 뛰어 올랐다. 문재인 정부의 언론이 이전보다 더욱 자유를 얻게 된 것은 분명하다. ⓒ더팩트

이재명 시장은 이전에도 여러 번, 여러 법을 자신의 반대편에 선 이들의 표현을 억압하고 공격하는 데 사용해 왔다. 이는 민주주의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다수가 의사를 결정한다’는 데에 있지 않다. 여러 의견과 주장이 자유롭게 발화되고, 그 과정에서 의사를 결정할 다수를 설득시키는 데에 있다.

“비판자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포용할 것인가.”

그가 진정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정치인이라면, 자신의 반대편에 선 이들에게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대신, 그들을 설득하고 포용하려는 노력을 먼저 기울였어야 한다. 자, MBC가 이재명 당선인에게 던지려는 질문이 원래 뭐였는지 떠올려보자.

ⓒ박성제 MBC 기자 페이스북

“선거 과정에서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었는데 앞으로 경기도지사가 된 후 비판자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포용할 것인가.” 민주주의 정치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비판하는 이를 처벌하는 대신 설득하고 대화하는 것. 그러나 그는 이 질문을 끝까지 듣지조차 않았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경기도를 한반도 평화번영 시대의 중심지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지역 화폐와 무상복지 사업을 연계해 복지 체감도를 높이겠다고 했다. 청년 배당, 산후조리를 지역 화폐로 주어 전통시장과 골목 상권에서 쓰이도록 하겠다고 했다. 경제민주화를 하겠다고 했다. 나도 경기도민으로서, 그가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디 민주주의의 정신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