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것들에게서 나는 냄새

해당 게시물에는 영화 [기생충]에 대한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영화를 아직 감상하시지 않은 분들 중 영화 내용 및 결론에 대한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은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 주세요.


“아랫것들은 냄새가 나.”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이 어렸을 때부터 듣고 자란 말이다. 그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자신이 자연스레 몸으로 느끼는 혐오감을 고백한다. 그는 이어 이렇게 진술한다. “평균적인 중산층 사람이 노동 계급은 무식하고, 게으르고, 술꾼이고, 상스럽고, 거짓말쟁이라 믿도록 교육받고 자란다 해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더러운 존재라 믿도록 교육받는다면 대단히 해로운 일이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가난한 이에게는 냄새가 난다. 아니, 악취가 난다. 향수나 디퓨저, 캔들로도 쉽게 가릴 수 없다. 뼛속 깊이 새겨지고, 장기에 깊게 배인 냄새이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는 이런 냄새에 관한 영화이다. 자신이 아래에서 부리는 이들이 필요 이상으로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싫어하는 박 사장(이선균)은 그의 기사 기택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다른 건 선을 넘을 듯 안 넘을 듯 결국 안 넘어서 좋은데, 냄새가 선을 넘어.”

그는 기택의 냄새를 이런 단어를 들어 설명한다. 노인 냄새, 지하철 타면 나는 냄새, 행주 삶는 냄새, 오래된 무말랭이 냄새. 그는 박 사장과 연교가 냄새를 언급할 때마다 스스로의 옷에서 냄새를 맡으려 애쓴다. 그는 스스로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을까. 아마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반지하에서 꾸물꾸물 올라오는 냄새이기 때문이다. 그 자신의 환경에 이미 깊게 밴 냄새이기 때문이다.

 

반지하의 냄새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분명 박 사장의 집에서도, 그의 가족들에게서도 어떤 냄새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 냄새는 선을 넘지 않는다. 부유한 자의 냄새는 달콤하고, 향기롭고, 은은하다. 하층 계급의 냄새는 악취가 되지만 상층 계급의 냄새는 향이 된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집은 비릿한 곰팡이 냄새가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다. 봉준호 감독은 거실의 통유리로 햇살이 쏟아지는 박 사장의 집과 반지하인 기택의 집을 비교하며 이것이 “빈부격차의 정점”이라고 말한다.

 

다송이 기택네 식구더러 ‘같은 냄새’가 난다고 이야기했던 일을 두고 그들은 고민을 시작한다. 섬유유연제를 바꾸어야 하나, 다 다른 걸 써야 하나 하고. 그러나 기정은 그 냄새가 “반지하 냄새”라며 이곳을 벗어나지 않으면 그 냄새가 가시지 않을 것이라 설파한다. 실로 그렇다. 10평 남짓한 반지하방에서 자취하던 시절, 온 집안의 벽지에는 곰팡이가 눌러 붙었다. 벽지에만 그친 것은 아니었다. 내 몸에도, 식기와 가구에도, 옷에도 그 꿉꿉한 냄새가 들러 붙었다. 꽤 비싼 디퓨저를 두어봤지만, 그 특유의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처럼 아마 집을 바꾸더라도 그 냄새는 꽤 오랫동안 그들을 따라다녔을 것이다. 그들의 옷과 가구와 몸에 기생하면서. 그 냄새가 단지 반지하 방에서 풍기던 비릿함이었을리는 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대개 아프기 마련이다. 병원에 가기조차 꺼린다. 큰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두려워서, 검진에 드는 비용조차 아까워서.

 

냄새의 아비투스

입 냄새의 80%는 설태, 충치, 치석, 치주염과 같은 치과 질환으로 발생한다. 호흡장기나 소화장기에 질병 또한 마찬가지다. 장과 간장 사이의 순환이 원활하지 않으면 체내 영양 흡수에 문제가 생긴다. 이것이 혈액으로 흡수되면 구취나 체취가 생겨난다. 간장 기능이 저하되면 냄새의 원인 물질이 혈류를 타고 온몸을 흘러 다닌다. 가난한 자는 냄새의 원인을 찾을 기회조차 없다.

 

씻는 습관조차 가난한 자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물값이 아까워 매일 샤워하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몸을 씻을 온수란 것은 찬 물을 어떻게든 끓여서 겨우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아니, 어떤 이들에게는 씻을 공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냄새를 씻어내지 못한 이들은 결국 ‘가난한 티’를 내게 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상류층과 하류층을 구분하는 건 단지 ‘자본’이 아님을 설명하며 ‘문화자본’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구별짓기) 이 문화자본은 인간의 몸에 깊게 베인 생활습관과 취향, 말투와 인지 능력을 통해 나타난다. 학력과 자격을 뜻하는 사회자본, 인맥을 의미하는 사회관계자본 또한 상류층과 하류층을 구분 짓는 단서다. 기태의 가족은 사회관계자본과 사회자본은 그럴 듯하게 속여냈지만, 이 냄새라는 아비투스는 쉽게 바꾸어내지 못했던 모양이다.

 

“계급구분이라는 것은 아주 잔인한 매커니즘이다. 졸부는 아무리 많은 돈을 벌게 된다 하더라도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무산 계급의 촌티를 쉽사리 벗어 버릴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생선용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할 줄도 모르며, 자기의 페라리 뒷유리창에 원숭이 인형을 매달아 둘 것이고, 전용제트기의 계기판에는 성 크리스토포로의 조각상을 올려 놓을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계급구분이라는 것은 아주 잔인한 매커니즘이다. 가난한 이에게만 나는 이 냄새는, 아주 잔인한 것이다.

 

근근이 버텨볼 뿐이다

이야기의 종점에서, 기택은 박 사장 저택의 지하로 숨어들고 기우는 아버지를 구해내기 위하여 부자가 되어 그 집을 사고야 말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변변한 학벌도 없는 그가 학벌조차 실패하는 시대에 그만큼의 돈을 벌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수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대단한 운이 따라야 할 것이다. 로또 한 번 당첨되는 정도로는 그 집을 살 수 없다. 아마 관객도, 감독도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는 현실에서 가난을 벗어나 부자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이들에게도 똑같이 들리는 이야기이다. 아마, 안 될 것이라고. 영화 속 대만 카스테라 집을 열었던 기택과 근세 역시 모두 비슷한 꿈을 꿨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꿈은 방공호를 향해 내려가는 계단처럼 끝까지 곤두박질칠 뿐.

가난한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함께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대답은 원론적일 뿐, 현실적이지는 못하다. 대개 우리는 기택과 근세처럼 적대적일 뿐이다. 우리는 똑같이 대만 카스테라 집을 열 것이고, 함께 망할 것이며, 서로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 골몰할 것이며 또 그 이후에도 똑같이 가난할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든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붙잡은 채로 근근이 버텨볼 뿐이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붙잡은 채로 근근이 버텨볼 뿐이다.

 

새로운 손님은 언제나 환영이야, 아이만 빼고!

 

ⓒ 조선일보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98명에 그쳤다. 2017년 1.05에서 더 떨어진 것이다. 앞으로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8 혼인•이혼통계’에 따르면 18년 혼인 건수는 25만 7600건에 불과했다. 지난 72년(24만 4780건) 이후 46년 만의 최저치이다. 2012년 이후 이 혼인 건수는 계속해 감소하고 있다. 신생아의 98%가 법적 부부에게서 태어난다는 것을 돌이켜 보면, 앞으로 출산율이 계속해서 떨어질 것이라는 데 이견을 제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부는 저출산 정책을 계속해 내놓고 있지만, 근본적인 부분은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지난해 교육부의 조사 결과, 초중고교생 1인당 월평균 29만 1000원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교육비만의 문제는 아니다.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이들은 정규직의 경우 43%, 비정규직의 경우 2%에 불과하고, 여성들의 경우 복직 시 경력단절이 우려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장 큰 문제는 출산과 육아가 오직 ‘부모’의 문제로 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 블리자드

 

새로운 손님은 언제나 환영이야, 너만 빼고.

거리 어딜 가든 노키즈존이 넘친다. 카페에도, 식당에도, 심지어는 호텔과 리테일 매장에도. 정부에서 노키즈존에 대한 조사를 따로 하지 않기에 정확한 수치는 파악이 어렵지만, 매장 앞과 SNS에 ‘어린이를 받지 않는다’고 공지한 곳은 정말 쉽게 만날 수 있다. 아동의 존재는 그 자체로 인상일 찌푸릴 이유가 된다. 아이가 소란을 피우기 전에도 이미 머릿속 각인된 짜증이 밀려온다. 아이를 동반한 부모들은 ‘차별’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아동들이 혐오의 대상이 된 건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애가 좀 그럴 수도 있죠.” 아이를 동반한 ‘진상’이 그 이유로 꼽힌다. 경기연구원의 조사 결과(2016.2)에 따르면, 공공장소에서 소란스럽게 우는 아이들로 인해 불편을 겪었다는 응답이 93.1%에 달했다. 불편을 겪은 장소로는 식당과 카페가 72.2%로 압도적이었다.

ⓒ TBS

아이들은 시끄럽다. 뛰어다닌다. 큰 소리로 운다. 종종 이런 특성은 안전문제를 만들거나, 주변에 소음을 안겨준다. 이런 아이들과 격리되어 편안한 식사를, 담소를, 쇼핑을, 휴식을 즐기고 싶다. 이 당연스럽고 자연스러운 욕구는 모든 아동을 배제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아이가 피해를 주기에, 아이와 마주하고 싶지 않다. 결국 아동들이 향할 곳은 단 두 군데 뿐이었다. 집과 키즈 카페.

 

아이들은 어떻게 혐오의 대상이 되었나

 

어떤 이들은 부모가 아이를 통제하지 않은 결과라고 했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말을 못 뗀 아동에게 울음은 유일한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어떤 이들은 ‘몇몇의 이기적인 부모’ 때문이라고도 했다. 아이가 먹을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기저귀를 버리고 간다고. 하지만 모든 부모가 ‘이기적인 진상’일 것이라고 가정해 출입을 막는 것은 너무 게으른 처사다. (그렇다고 다른 ‘성인’들과 똑같은 음식을 먹을 수 있고, 기저귀가 필요 없는 연령의 아동이라고 출입이 허락되나?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부모가 아닌 진상들을 더 자주 만날 수 있다. 직원에게 욕설을 하고, 가게 전체가 떠나가라 시끄럽게 수다를 떨고, 계산을 한다면서 동전을 던지는 이들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 역시 미리 선별해내야 하지 않겠나. 만약 진상을 부리는 이들 중 남성의 비율이 더 높다고 남성의 출입을 금지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마 그 가게는 여론의 포화를 맞고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결국, 하나의 결론에 이르게 된다. 아이와 부모가 만만했을 뿐이라는 것.

 

오히려 아이가 예의를 배우지 못하게 막는 쪽은 ‘노키즈존’이다. 가야 할 식당을 잃은 아이는 식당에서의 예의를 배울 기회도 박탈당한다. 가야 할 매장을 잃은 아이는 매장에서의 예의를 배울 기회도 박탈당한다. 아동이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영역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영역 안에 있을 때뿐이다. 사회적 경험은 사회적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아이는 부모만 키우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예의를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부모의 의무만이 아니다. 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당신의 의무이기도 하다. 육아의 책임은 육아를 하지 않는 모든 시민도 함께 지는 것이다. 이 의무를 포기하겠다는 것은 공동체를 포기하겠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진정 이기적인 것은 불쾌함을 참지 못하고 시민으로서 져야 할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11세 작가’로 유명한 전이수 씨는 노키즈존에 대해 이렇게 썼다. “어른들이 조용히 있고 싶고, 아이들이 없어야 편안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난 생각한다. 어른들이 편히 있고 싶어하는 그 권리보다 아이들이 가게에 들어올 수 있는 권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 어린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는 거니까. 어른들은 잊고 있나 보다. 어른들도 그 어린이였다는 사실을.”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지닌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국민이 아닐 리 없다.

그가 나에게 버텨낼 문장을 주었듯이

허지웅 작가가 지난 12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투병 사실을 알려왔다. “악성림프종 진단을 받았습니다. 혈액암의 종류라고 합니다. 붓기와 무기력증이 생긴지 좀 되었는데 미처 큰 병의 징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주부터 항암치료를 시작했습니다. <버티는 삶에 관하여>에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함께 버티어 나가자’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삶이란 버티어 내는 것 외에는 도무지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마녀사냥]에 출연했던 얼마간 이후부터, 브라운관에 비친 그의 얼굴은 퉁퉁 불어 있었다. 그 때문에 그는 ‘성형 의혹’을 받으며 필러와 보톡스 탓이라는 악플을 감수해야 했다. 그는 [미운 우리 새끼]에서 무기력증을 호소하며 비뇨기과를 찾기도 했다. 병원은 그에게 ‘남성 갱년기’라는 진단을 내렸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제 와 고백하자면, 나는 그의 꽤 큰 팬이었다. 그의 애티튜드가 어떻건 그의 글을 좋아했다. 그의 생각이 어떻건, 그의 글은 읽는 재미가 있었다. 처음 읽었던 그의 글은 대학내일에 연재되던 [개포동 김갑수 씨의 사정]이라는 소설이었다. 유쾌하고 진부한 이야기지만 그의 문장은 정갈했고, 표현은 새로웠다. 어느 순간 대학내일에 그의 글이 연재되지 않았고, 이유가 궁금했다. 그의 블로그에 들어가 그것이 어떤 기독교 단체의 항의 때문임을 접했다.

황당했고 아쉬웠다. 아쉬웠던 만큼 그의 블로그를 열심히 들락거렸던 것 같다. 얼마 후 그를 JTBC [썰전]과 [마녀사냥]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여러 신문과 잡지, 또 책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와 같은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읽는 맛이 있는 글, 울림을 줄 수 있는 글,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글, 그런 글.

하지만 동시에 생각했다. 글을 쓰는 삶이 쉬울 리가 없다고, 글로 벌어 먹고 살 방법이 없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글을 쓰는 일은 내게 여전히 즐거운 일이었다. 허지웅 작가가 블로그에 쓴 글, ‘버티라’는 말은 그런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작가로 살아남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작가로 살아남지 못한 이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끝까지 버티어 내다보면 살아남아 마침내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갖게 될 것이라고.

글쓰기와 관련된 대외활동을 시작했고, 대외활동으로 알게 된 인연이 (인턴과 마찬가지인 일이었지만) 직업으로 이어졌다. 허지웅 작가가 한때 일했던 곳이었다. 함께 기자 생활을 했다던 상사도 있었다. 일은 고됐다. 정시퇴근은 먼 일이었다. 매일 컨펌과 수정 사이에서 진땀을 흘려야 했다. 한숨이 늘었고, 군살도 늘었다. 늦은 시간 퇴근하고 먹을 건 야식뿐이었다.

그만둘까 싶었다. 그만두고 싶었다. 월 30의 월세와 5만원 남짓의 공과금, 생활비를 감당할 자신은 없었지만, 매일 악몽을 꾸는 삶보다는 낫겠다 싶었다. 생일이었다. 컨펌이 나질 않았다. 아홉 시, 열 시, 열한 시, 열두 시. 생일이 끝났다. 열두 시 반쯤이 되어서야 겨우 직장 문 밖을 나설 수 있었다. 밖에서는 애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와락 안았다. 카페에 가 선물을 열어 보았다. 마음이 먹먹해졌다. 허지웅 작가의 [버티는 삶에 관하여]가 놓여 있었다. 편지지를 사지 못해 던킨도너츠 영수증지에 쓴 절절한 편지 한 통과 함께. 5개월 남짓 남았던 계약기간을 그 책과 편지를 보며 버텼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자 이를 악물었다.

삶이 힘들어지는 날에는 그 책을 손에 들었다. 같이 버티어 내자는 그 부분을 몇 번을 반복해 읽었다. 그 덕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여태껏 잘 버텨왔다. 얼마나 더 버티어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허지웅 작가의 투병 소식을 들었을 때 맘이 아렸던 데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 그가 20대 초반 이후의 내 삶에 있어 크고 작은 영향을 미쳐온 사람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책 한 구절을 다시 중얼거렸다. “마음속에는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문장을 한 가지씩 준비해놓고 끝까지 버팁시다. 우리의 지상 과제는 성공이나 이기는 것이 아닌 끝까지 버텨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버티고 버텨서 다음 세대에게 후하고 창피하지 않은 우리가 됩시다.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고 버텨 남 보기에 엉망진창이 되더라도 나 자신에게는 창피한 사람이 되지 맙시다.”

그가 걸린 병이 얼마나 큰 병인지, 나는 모른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항암, 어려운 일이고, 아픈 일이다. 암으로 스러져 간 이들을 나는 많이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암도 암이지만, 항암의 과정을 견디기 힘들어 했다. 나는 그에게 병마와 싸워 이겨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가, 그가 할 수 있는만큼 끝까지 버티어 내기를 기원한다. 그가 나에게 지켜내고 버텨낼 문장을 주었듯, 나는 그에게 먼발치서 응원을 보낸다.

괜스레 정이 가는 사람이 있다

괜스레 정이 가는 사람이 있다. 접점도 없고, 겹치는 취향도 없다. 나이도 다르고, 사는 곳도 다르다. 취미도, 직업도 다르다. 하다 못해 같이 좋아하는 음식 따위도 없다. 생각도, 지향도, 살아 온 인생도 살아갈 인생도 다르다. 그러나 말 한 마디라도 더 건네고 싶고, 조그만한 도움이라도 주고 싶은 이가 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니가 무슨 상관이라고. 많은 경우, 주변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괜히 내가 오지랖 부리지 말라고 비웃었을 게 분명하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이런 호의는 폭력이 되기 쉽다. 이상한 일이다. 아무런 공통점 하나 없이 누군가에게 이런 종류의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평범한 일은 아니다. 연애감정의 그것과는 또 다르다.

잘 생각해보면, 내가 그에게서 봤던 것은 어떤 상처였는지도 모른다. 깊은 우울감, 외로움과 어딘가에서 받았던 상처.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이었고, 내가 받았던 것이었으며, 그리고 내가 조금씩 극복해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하는 고민은 내가 겪었던 고민이었고, 그가 아파하고 있는 건 내가 아팠던 상처였으니까.

그래서 그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었다. 이렇게 하면 조금 덜 아플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묻고 싶었다. 그의 자존감을 어떻게든 붙들어 주고 싶었다. 당신은 이만큼 가치 있고 멋진 사람이라고,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충분히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좌절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그 말들이 얼마나 가슴에 와닿을지는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꼰대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조금은, 조금은 멀찌감치서 그(들)를 응원하기로 했다. 무례가 되지 않는 선에서, 다만 그가 도움을 청할 때 언제든지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거리에서.

나는 이쯤 서서 당신을 응원할 터이니, 그 행복을 간절히 빌 터이니.

팀 해체에 노련한 밴드가 어딨나요

달이 차오른다, 가자

장기하와 얼굴들이 해체를 선언했다. 2008년 싱글 [싸구려 커피]를 들고 데뷔한 지 무려 10년 만이다. 팬들에게는 어쩌면 꽤 갑작스러운 결별이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해체이기 때문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언제까지나 음악을 통한 실험과 놀이를 보여줄 것만 같았던 팀이었다.

그들은 18일 0시 해체를 선언하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문장은 담담했다. “곧 발매될 5집은 장기하와 얼굴들의 마지막 앨범이 될 겁니다. 앨범 발매 후에는 올해 말까지 콘서트 등 여러 경로로 부지런히 여러분을 만나게 될 거예요.”

오랜 준비를 한 듯 보였다. 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저희들은 언제나 새로워지기 위해 노력해 왔”고 “이런 결정 역시, 또 다른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를 만류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오랜 기간 이들의 활동을 지켜봐 왔던 팬들과 동료들은 그저 숙연하게 감사와 찬사를 보낼 뿐이었다.

 

내가 한다면 하는 사람인 거 몰라

그래, 그들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장얼은 언제나 새로운 밴드였다. 1집은 이전에는 없던 음악이었다. 평단의 호평을 휩쓸었다. 데뷔와 동시에 ‘한국 대중음악의 오래된 미래’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산울림과 강산에에게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해 보였지만 그들의 음악과는 전혀 다른 음악을, 그들은 하고 있었다.

이후의 앨범들도 마찬가지였다. 2집은 1집과 달랐고, 3집은 2집과 달랐다. 4집은 3집과 또 달랐다. 그들은 매 앨범마다 밴드로서의 진화와 변화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2집 [장기하와 얼굴들]은 ‘1인 밴드’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았던 1집 [별일 없이 산다]가 보여주지 못했던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을 설명해주는 앨범이었다.

3집 [사람의 마음]에서는 로큰롤을 키워드로 사람의 마음을 잔잔하게 펼쳐냈다. 우울하고 어두운 마음,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마음, 이별을 견디지 못해 슬퍼하는 마음까지. 4집은 진지하기보다는 재밌는 음악들이었다. 앨범의 타이틀과 동명의 곡인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부터 타이틀곡 ‘ㅋ’과 ‘괜찮아요’, ‘빠지기는 빠지더라’ 같은 곡에는 작사가로서의 장기하가 얼마나 뛰어난지 감탄하게 된다.

 

10년이 아무리 짧아도 어떻게 잊혀질 수가 있나

이런 장기하와 얼굴들을 좋아하던 팬들에게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소식이었을 것이다. “곧 발매될 5집은 장기하와 얼굴들의 마지막 앨범이 될 겁니다. (…) 그리고 2019년의 첫날을 기점으로, 저희 여섯 명은 각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팬들로서는 깜짝 놀랄만한 선언이었다.

홈페이지에서 전문을 읽을 수 있다.  http://kihafaces.com/

그들은 해체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번 음반은 장기하와 얼굴들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 될 거예요. 그건 다르게 말하면, 이제 장기하와 얼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가장 멋진 모습일 때 가장 아름답게 밴드를 마무리하기로, 저희 여섯 명은 뜻을 모았습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 이것보다 더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없기에 그만하겠다는 말이다. 박수칠 때 떠나겠다는 이야기이다.

쉬운 결정이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모든 멤버에게 말이다. 위에도 말했듯, 그들은 매 음반마다 변화를 보여주려 애썼다. 하지만 한 뮤지션이 해낼 수 있는 변화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아마 장기하와 얼굴들이 ADOY나 BYE BYE BADMAN, 실리카겔의 음악을 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그들이 하고 싶어 하리라 생각하지도 않는다.) 팬으로서는 아쉽지만, 아마 그들의 판단과 의견을 존중하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을 것 같다.

 

팀 해체에 노련한 팬들이 어딨나요

장기하와 얼굴들은 ‘2세대 인디씬’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크라잉넛, 노브레인과 자우림, 언니네 이발관 이후 카우치 사건 이후 괴멸되어 가고 있었던 인디 씬에 나타난 단비 같은 존재. 장기하와 얼굴들과 비슷한 시기 데뷔한 검정치마와 국카스텐, 10cm와 브로콜리 너마저 등의 밴드들을 대표할만큼 음원과 티켓 파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후세대 밴드들에게 레퍼런스가 될만한 작업물들을 내놓는 밴드였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해체는 ‘2세대 인디씬’ 역시 조금씩 저물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음 세대는 누구일까. 아직 보이지 않는다. 새소년과 파라솔, 혁오와 카더가든, 치즈와 윤딴딴. 볼빨간 사춘기와 라이프앤타임. 인디씬에서 저마다의 영역을 확장해가며 개성 있는 음악을 보이는 뮤지션은 많지만 시대를 이끌고 있다거나, 시대의 상징이 될만한 음악을 하고 있다 말할 수 있는 이들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이 앞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조급해할 필요 없다. 말했던 그 ‘세대’가 끝나버린 것은 아니니까. 여전히 국카스텐은, 10cm는, 브로콜리 너마저는, 검정치마는,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으니까. 동시에 매해 새롭게 이전에 없던 것들을 만들어 나오는 뮤지션들이 데뷔하니까 말이다. 그들이 장기하와 얼굴들이 전혀 기억나지 않을 만큼의 멋진 음악을 들려주길 기대한다.

더불어 장기하와 얼굴들의 새로운 앨범을 기다린다. 최고의 음악이 무엇일지 상상하면서, 상상을 뛰어넘을 무언가가 나와주길 바라면서. 그렇다고 그들의 해체에 노련해질 수는 없겠지만.

Beep, 너와 나 사이의 아주 적당한 경계선

Hi there 인사해 호들갑 없이

2008년 9월 미아라는 곡으로 데뷔한 뒤 무려 10년이다. 10년의 세월 간 아이유가 쌓아온 것은 결코 적지 않다.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강조한 곡들,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이라는 고백으로 국민여동생의 자리를 굳혔으나, 그는 더 이상 여동생, 아이돌 가수로 남아 있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이제 누구도 아이유에게 이런 걸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Modern Times]의 수록곡 금요일에 만나요와 싱글 [마음]을 통해 자신의 프로듀싱 능력을 시험하더니, 이내 자신이 프로듀서를 맡은 미니앨범 [CHAT-SHIRE]를 발표한다. 이 앨범에서 아이유는 누구도 쉽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한다. 가수 혹은 엔터테이너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그런 자신에 대한 시선들에 하나하나 반박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을 통해서가 아닌, 자신의 앨범을 통해서.

그는 아이돌로 시작했지만 아티스트로 거듭났다1). 남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뿐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아이유의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는 싱글 [삐삐]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번 곡을 통해 10주년을 함께해 온 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건네는 대신, ‘아이유’를 향한 사람들이 시선에 대응한다. 삐삐(Beep Beep) 소리를 내면서.

 

이 선 넘으면 침범이야 매너는 여기까지

“쟤는 대체 왜 저런 옷을 좋아한담. 기분을 알 수 없는 저 표정은 뭐람. 태가 달라진 건 아마 스트레스 때문인가. 걱정이야 쟤도 참.” 가사에서 알 수 있듯 이 곡은 ‘스물셋’의 연장 선상 위에 있다. [CHAT-SHIRE]에서는 타이틀곡 ‘스물셋’을 통해 자신을 향한 대중들의 이중적 시선을 비웃으며 자신이 ‘여우인지 곰인지’ 맞춰보라고 이야기했던 그다. 무언가 날이 선 듯 보였던 아이유였지만 그는 지난 앨범 [Pallete] 이후 한층 여유로워졌다.

 

“스킨십은 사양할게요 back off back off 이대로도 좋아요 balance balance (…) Hello StuPID 이 선 넘으면 ” 그는 오지랖 넓은 이들을 애써 비웃기보다, 그들에게 한 걸음 물러서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선을 넘어 자신에게 ‘이래라저래라’하는 이들에게 분명한 경고음을 날린다. 하지만 이 곡이 연예인과 그를 둘러싼 대중들의 관계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경계선을 허물기 위해 다가오는 이들뿐 아니라, 자신의 경계선을 먼저 거둬들이며 다가오는 이들 역시 거부한다. “I don’t care 당신의 비밀이 뭔지 저마다의 사정 역시 정중히 사양할게요 not my business”라고 노래하면서 말이다. “나는 지금도 충분히 피곤해. 까만 속마음까지 보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했던 전작 ‘안경’에서도 읽을 수 있는 정서다.

 

그 선 넘으면 정색이야 거리 유지해

그가 이런 가사를 써내기까지 어떤 심정이었을까.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들어야 했을 질책이 충분히 짐작이 간다. 관심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관심에 비례하는 양의 무례를 마주한다. 때로는 그의 책임이 아닌 일조차도 그에게로 돌아간다. 관심을 보여달라고 하는 이들은 얼마나 많을까. 스타에게서 받은 관심을 훈장처럼 여기며, 관심을 받기 위해 기어코 이상해지고야 마는 사람들이 있다. 트위치에 널린 저격 유저들을 보라.

크기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이런 이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이런 종류의 무례한 경계 허물기는 빈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쉽게 겪게 되는 일이다. 걱정해주는 척 건네는 오지랖들이 대개 그렇다. “이제 슬슬 결혼할 준비 해야지.” “취직준비는 잘하고 있니, 요새 어렵다는데 걱정이네.” “그렇게 살이 쪄서 어떡하니.” 따위의 말들. 그런 걱정이 허락된 관계가 아니라면 그건 공격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알아서 잘 할게요…

‘나와 너’라는 관계에서 허락된 것 이상의 것을 요구하고, 또 이해 받길 원하는 사람들. 자신의 다름을 드러내 특별함을 전시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이제 통성명을 한 사이에 맥락 없이 자신의 고통과 기구함을 늘어놓는 사람들. 전자의 이들이나 후자의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욱 명확한 경계선뿐이다. 선을 긋는 것이 악역을 자처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되니까.

 

We don’t know each other

이런 종류의 경계 허물기에 어울리는 수식어는 딱 하나다. 무례함. 이는 지독히도 무례한 일이다. 관계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자신의 판단과 감각에 근거해 타인의 삶에 함부로 난입해, 정해놓은 경계와 규칙을 실컷 깨어 놓기 때문이다.

무작정 가깝고 격 없는 것이 ‘좋은 관계’임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모든 관계에는 적당한 거리가 있고, 그 거리는 그 관계의 깊이와 시간만큼 좁혀지기 마련이다. 상대방의 선 안으로 들어가는 것, 상대방을 나의 선 안으로 초대하는 것 모두 그 상대의 동의가 필요한 일이다.

무리해서 경계선을 넘지 말 것. 함부로 그 선을 넘어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를 곤란하게 하지 말 것. 놀랍도록 당연한 이야기다. 놀랍도록 잘 지켜지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를 하나의 인간으로서 존중한다면, 그가 그은 경계도 면밀히 살필 것. 당신의 나라는 아직 EU에 가입하지는 않은 모양이니까.

 

1) 위 두 개를 등치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돌인 아티스트도, 아티스트인 아이돌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돌로 출발한 이가 아티스트가 되어간다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굿바이, 트웬티스 타임라인

 

하이, 트웬티스 타임라인

글을 쓰고 싶었다. 뭐 하나 꿈 없이 방황하던 나에게, 잘 맞지 않는 전공 탓에 끙끙대던 나에게 글은 유일한 돌파구였다. 책을 읽고 혼자 글을 썼다. 영화를 보고 글을 썼다. 차곡차곡 쌓아 왔지만, 그래, 글은 도저히 직업으로 삼을만한 일은 아니었다. 대개 자기 책을 쓰겠다고 덤비는 풋내기 작가들의 말로는 처참했다. 굶거나, 포기하거나. 둘 다 바람직하지는 않았다.

직장인이 되고자 했다. 평범한 직장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 그러니까 [미생] 속에서 나올 것 같은 정말로 평범한 직장을 꿈꿨다. 하지만 [미생] 속 세상은 답답했다. 그 드라마는 지겹게도 현실과 맞닿아 있었다. 그런 현실을 이야기하는 글을 썼고, 꽤 반응이 좋았던 것 같다. 이런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외활동을 알아보았다. 제일 관심이 가던 곳은 그때 즐겨보던 [미스핏츠]라는 곳이었다.

그런데 웬걸, 지원공고는 기간이 코 앞이었다. 빠르게 포기했다. 다른 곳에 눈을 돌리니 [트웬티스 타임라인]이라는 매체가 보였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이가 그곳의 에디터로 글을 쓰고 있었고, 덕분에 나도 종종 보게 되었던 재미있지만 마냥 마음에 들지는 않는 매체였다. 무언가 좀 더 속 시원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한.

내가 한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자기소개서와 서류를 썼다. 그냥 살아온 날을 썼다. 지금의 나를 만든 일들을 서술했다. 얼떨결에 붙었다. 면접은 떨렸다. 무슨 소리를 했는지 나와서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놀랍게도 붙었다. 서강대에서 신입 에디터를 대상으로 한 교육이 열렸다. 그리고 그때 그곳에서 트웬티스 타임라인을, 편집장을 처음 만났다.

 

트웬티스 타임라인이 내게 준 것들

트웬티스 타임라인은 꽤 재밌는 매체였다. 고작 몇만 원 안 되는 활동비가 전부였지만 매주 토요일이 그렇게 기다려질 수 없었다. 처음 기획안을 써갔던 날을 기억한다. 헤어진 연인들을 위한 영화 속 장면 ○선, “그걸 대체 무슨 재미로 봐?” 축구 vs 야구, 당신은 당신 생각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다, 비정상으로 살아간다는 것, 누가 약팀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소튼을 보게 하라. 뭐 그런 말 같지도 않은 말들을 잔뜩 써갔다.

마지막 기획안이 기사로 채택됐고, 신나게 글을 써내려갔다. 잘 못 하는 영어로 기사를 해석해가면서, 정보를 찾아가면서, 때로는 날을 세워가면서. 첫 글은 엉망이었다. 하지만 이내 몇 번의 회의를 거치며 칼럼 내지 기사로 불릴 수 있을 만큼 다듬어져 있었다. 트웬티스 타임라인의 구성원들과 편집장의 피드백 덕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트웬티스 타임라인에서 글쓰기와 컨텐츠를 새로 배웠다. 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수백 개의 좋아요를 받고, 잘 보았다고, 좋은 글이라고, 고맙다는 반응을 받았을 땐 어리벙벙했다. 글이라는 게 이런 힘을 가진 매체였다. 나는 전혀 몰랐다. 글을 쓰자고 다짐했다. 글을 써서 먹고 살자고 다짐했다.

 

이 매체의 폐간은 우습고도 궁금한 일일 것이다

1년 정도의 활동을 마치고, 일자리를 고민하고 있을 때 편집장은 내게 이런 저런 일들을 소개해주었다. 즐겁고 기쁜 일은 아니었지만 월세가 급했던 내게는 큰 도움이었다. 안 풀리는 일이 있을 때는 짜잔,하고 나타나서 이런 저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약팀의 미래를 묻는다면 고개를 들어 소튼을 보게 하라 http://20timeline.com/1869

편집장 김도현. 그는 내게 세상의 모든 이치를 꿰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가끔 의견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대개 나의 말을 들어주었고, 나를 어여삐 여겼다. 그는 내게 은인이기도 했고, 나의 클라이언트이기도 했으며,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트웬티스 타임라인]은 7일, 일요일 부로 사라졌다. 편집장 김도현 때문이었다. 동시에 두 명의 에디터와 교제했다고 한다. 그 두 명의 동의는 물론 없었기에 그 관계를 다자연애로 정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가 져야 할 도덕적인 책임은 분명하다. 돈 대신 믿음이, 보상 대신 애정이 에디터들의 노력의 값이 되는 매체였으니, 신뢰가 무너진 이상 그가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매체의 폐간이 결정되었다. 사실 누군가에게는 우습고 궁금한 일일 것이다. 아니, 고작 바람을 피웠다고 매체의 폐간이 결정되다니. 우리가 모르는 숨겨진 무언가 있는 거 아니야? 뭐 물론 활동과 활동 사이에 조금씩 갈등이 쌓여왔을 수는 없겠지만 글쎄. 추측으로 끼워 맞춘 정의로 심판자가 되고 싶은 마음은 잘 알겠으나 (댁들에게는) 아쉽게도, 그딴 거 없다.

 

매체 = 편집장?

트웬티스 타임라인은 김도현 전 편집장 그 자체였다. 기획과 기사 작성, 편집과 발행, 운영 과정에서 그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가 구성원의 의견을 얼마나 잘 들어주었느냐와는 무관한 이야기다. 그가 얼마나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었느냐와도 무관한 이야기이다. 다만 그는 대부분의 일을 혼자서 처리했다. 내가 낙서를 가져가면 그의 편집을 거쳐 그럴싸한 문장이 탄생했다. 사진 몇 장과 바이럴 문구를 덧붙인 글은 페이스북 뉴스피드를 여기저기 떠돌았다. 그건 모두 그의 몫이었다.

그리고 그 역할을 누구에게도 주지 않았다. (어쩌면 주지 못했다.) 사람은 계속 바뀌고, 일은 점점 복잡해진 탓에 그 모든 걸 자신이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공유하지 않았던 것도 적지 않다. 트웬티스 타임라인이 어떤 자금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물어보았으나 에디터들에게 돈으로 부담감을 주고 싶지 않다며 이야기를 삼키던 그였다.

결국 트웬티스 타임라인은 그를 대신할 인물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숨겨왔던 그의 잘못이 드러났고, 매체는 폐간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가 했던 역할을 어색하게나마 해낼 수 있는 인물이 있었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매체가 폐간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누군가의 말들처럼 편집장의 연애사는 매체의 존폐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니까.

 

이 결말에는 배울 것이 있다

나는 많은 매체들이 이런 식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안다. 소위 뉴미디어 또는 대안 미디어라고 불리는 매체들이 보통 그렇다. (나는 그들 대부분을 언론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소수의 사람들에게 의존하고, 소수의 사람들이 끌고 가는, 그래서 그 소수의 사람들이 역할을 할 수 없을 때 버티고 버티다 사라지게 되는.

그들이 사람을 길러내는 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게 그들의 잘못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돈 몇 푼 안 되는 매체에서 다음 스타를 만들어낼 수는 있어도, 그 매체를 이끌어 갈 이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희생과 애정, 과로가 필요한 일이다. 트웬티스 타임라인은 (몇 사람들에 의하면) 우습게 끝나고 말았지만, 다른 곳들은 이를 이끌던 한 사람과 함께 끝나지 말아야 한다.

부디 이 결말이 누군가에게는 교훈이 되기를, 그것이 양다리를 걸치지 말자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 편집장이 양다리를 걸치고, 이것이 발각되고, 그 책임으로 물러나도 존속이 가능한 매체여야 한다.

더불어 트웬티스 타임라인에게 작별인사를 고한다. 내가 가장 열심히 글을 썼던, 그래서 가장 소중한 날의 땀들이 남아 있는 곳이다. 아마 누군가 찾을 날이 많지 않은 글들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매체의 페이지가 남아 있는 한 그 글들이 누군가에게 계속 말을 걸어주길, 그 누군가가 그 글로부터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기를.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고.